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혼노지의 변 (문단 편집) === 초조설 === 미츠히데가 앞날이 어찌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모반을 일으키게 되었다는 주장. 미츠히데는 사실 오다 가의 고유 가신도 아니었고, 노부나가 밑에 있은지도 몇 년 밖에 되지 않은 가신 중 신참자였다. 그럼에도 미츠히데는 가신들 중에서 상당히 중용되었는데 미츠히데 자신의 능력이 있기도 했지만 노부나가의 신임이 컸다는 점도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1580년, 노부나가가 여러 가신들을 내치는 사건이 일어났다. 비록 미츠히데는 내쳐지지는 않았으나 노부나가의 신임을 점점 잃어가는게 아닌가라는 불안감이 들었고 이 때문에 모반을 일으켰다는 것이 초조설의 핵심이다. 대체로 미츠히데가 노부나가의 신임을 잃어가고 있었던게 아닌가에 대한 사항으로 꼽히는 것들은 이렇다. * 노부나가에게 시코쿠 정책을 진언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 * 미츠히데가 노부나가에게 복속되기 전에는 [[아시카가 요시아키]]의 가신이었기 때문에 아시카가가 추방된 이후에 노부나가의 심중에 미츠히데에 대한 의심이 생겼다는 것. *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주고쿠를 원정할 때 노부나가가 구원하러 가라고 명했는데 미츠히데는 자신보다 낮은 신분 출신인 히데요시의 밑에서 그의 지시를 받으며 전쟁을 치뤄야 하나에 대한 반감 때문에 모반을 일으키게 되었다는 것. 그러나 이미 이전에도 미츠히데는 히데요시 밑에서 전투를 치룬 적이 있었기 때문에[* 히데요시가 하리마노쿠니의 칸키성 공략 시나 미타 성을 공격할 때 원군으로 히데요시를 구원했던 적이 있었다. 게다가 히데요시가 비록 천한 신분 출신이라고는 해도 미츠히데보다 먼저 노부나가의 가신이 되었기 때문에 히데요시가 선배인 셈이고 미츠히데도 여기에 딱히 이론을 제기한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이것은 설득력이 없다. 어떤 학자는 당시 미츠히데의 나이가 무려 67세였고, 자신의 뒤를 이을 적자인 아케치 미츠요시의 나이가 겨우 19세에 불과했기 때문에 자신이 죽은 뒤에 아들이 노부나가에게 기용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모반의 원인이 된게 아닌가라고 보기도 한다. [[야마오카 소하치]]의 소설 오다 노부나가에서는 기본적으로 아케치 미츠히데와 오다 노부나가의 복잡한 관계를 묘사하면서 초조설을 베이스로 해서 원한설, 야망설을 적절히 조합한 복합적인 원인을 제시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